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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ging

개인 드림 백업 티스토리

슬랩 스틱 크래쉬!

트윙클 시리즈의 우마무스메에게 있어 중요한 중상 경주가 많은 계절, 가을. 최근 레이스에서 성적이 부진해져가는 친구의 기운 없는 모습을 보고 카베르네 캠벨은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고착되어 변하지 않는 상태...지친 마음에 무기력해지고 소용없단 체념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결국 “너도 내가 계속 이러면 불편하지”같은 약한 소리를 내뱉으며 사과하는 그녀를 보고 벨은 큰 충격을 받고 만다. 

‘내가 힘들 때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다면, 혼자가 아니라고 알려줄 수 있었다면……’

이대로는 안된다. 그리하여 그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초조해하던 중 벨은 히시 아마존과 나리타 브라이언의 성제제 밴드 결성 소문을 듣게 된다. 그리고 마야노 탑건에게서 갑작스러운 선언을 듣게 되는데……?


『성제제』

트레센 학원의 연례행사로, 체육제 분위기가 나는 봄의 대감사제와 다르게 문화제 느낌을 물씬 풍기는 가을의 대감사제라고 일컬어진다. 

레이스 세계의 팬들이나 트윙클 시리즈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 등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며 교류를 더 깊이 해 가는 중요한 이벤트. 

그런 이벤트의 슬로건이 ‘모두에게 응원을’이라는 공지가 나왔다는 것은, 이 슬로건에 알맞은 활동을 각각 점차 추진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히시 아마존은 ‘모두에게 응원을’이라는 성제제의 슬로건에 맞춰 기숙사생들의 등을 밀어주고 싶은 모양이다. 자신의 친구처럼 레이스에서 부진한 성적에 의해 사기가 떨어지고 침체되어 있는 학생들을 위해, 히시아마는 직접 발 벗고 나선다. 한없이 드높고 굳센 벽, 나리타 브라이언에게 끊임없이 부딪히는 자신을 보고 용기를 얻도록.

그런 히시아마의 결심에 벨은 큰 동질감을 느끼며 자신도 똑같이 응원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다. 그리고 스스로의 목표인, 사랑하는 모두에게 앞으로 자기 자신이 의지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두 사람에게 밴드 멤버로 끼워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내뱉는 말은 간결하지만 속 깊게 우러나온 간곡한 열의로 인해 히시아마도 제법 고민에 빠진 눈치였다. 쫓아가는 자와 쫓기는 자의 일대일 승부에서만 나오는 열이 있는 법이다만, 과연 이 구성에서 벨이 합해져도 자신이 원하는 형태가 될지……. 

 

그리 쉽게 허락하지 않을 거란 걸 벨도 예상했는지, 그녀도 긴장하며 준비한 설득의 말을 내놓았다. “히시아마 씨가 바라는 그림은 망치지 않도록 할게요. 저 카베르네 캠벨은……모름지기 부활의 상징이지 않은가요?”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어색한 벨이었지만 설득에 성공하기 위해서 비장의 패, 오사카배에서의 역전승의 기억을 꺼냈다. 낮은 인기와 불안정한 추입 작전에 의해 벨이 우승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중의 예상을 뒤집어버려 화제가 되었던, 정말 역전의 빈스토크가 된 날이었다.

그에 더해 아득한 저 너머에 있는 삼관 우마무스메, 브라이언에게 도전하는 것은 히시 아마존뿐만 아니라 벨 또한 마찬가지. 나약하고 위태로웠던 벨이 동경을 뛰어넘으려 부딪히는 희망의 이야기는, 이제 모두가 마음속 어딘가 응원하고 싶어지는 형태이자 기운과 용기를 전달받을 수 있는 그림이 되기 충분했다. 밑바닥에서 올라온 자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을지, 벨은 부디 믿어달라며 어수룩하게나마 고개를 숙였다. 

 

……하핫, 설득하려고 아주 제대로 준비해왔구나.

간절하고 필사적, 그렇기에 힘을 잔뜩 준 자기 과시에 히시 아마존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만 한풀 꺾이고 말았다. 어떤 시련이 찾아오든, 어떤 현실이 닥쳐오든 모두가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주면 좋겠다는 히시아마이다. 물론 그 모두에는──벨도 포함되어 있으니, 정작 자신이 그 스타트를 막아버리는 건……멋없는 짓이겠지. 게다가 벨의 말대로 그녀는 충분히 기대를 걸 만한 인재이긴 했다. 미호동의 기숙사생으로서, 비슷한 세대의 라이벌으로서, 그녀의 변화를 지켜본 바에 의하면 벨이 누군가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은 사실이다. 밑바닥에서 올라온 카베르네 캠벨이 무대에 난입해 이렇게 우리와 대치하고 있다는 것, 관객에겐 그것도 하나의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그렇게나 거리가 멀던 우리들과 이런 관계가 된 것은 분명 벨이 일으킨 변화니까. 히시 아마존은 마음을 굳혀 내린 결단을 전하려고 슬슬 입을 뗐다. 그런데 머릿속에 문득 스쳐 지나가는 의문. 

‘악기는 연주해 본 적 있냐’는 질문에 벨의 표정은 스멀스멀 경악으로 변해갔으며 그제서야 자신이 힘조절이 서툴러 악기가 고장 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까까지 강한 척 할 때는 언제냐는 듯, 안색이 파래져 발을 동동 굴리는 모습에 그만 히시 아마존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마음만이 앞서 앞뒤 생각을 못했구나! 매번 신중하고 준비성 하나는 철저한 벨이, 이번에는 자기 마음을 최우선으로……이것 또한 변화인가. 히시아마는 벨에게 초조해지지 말라고 익숙하게 달래주며 시선으로 브라이언에게 마지막 허락을 구했다. 브라이언은 아무 소리 없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 다운 신뢰감을 표출해내준 것이었다. 

 

한편, 마야노 탑건은 이 우당탕탕한 이야기를 듣고 벨에게 상당히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벨이 정식으로 히시아마&브라이언 팀에 가입을 마친 뒤 멤버 구성 제출서를 미리 내는 바람에, 소문을 뒤늦게 들은 마야노가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벨 쨩까지 있는 거라면, 꼭 들어가고 싶었어~……! 

이 어른스럽고 조숙한 우마무스메들 사이에 마야가 들어왔으면, 완전 멋지고 카리스마 있는 분위기 연출이 가능했을 거라구~! 그럼 마지막에 마야가 파이널 어프로치로 마무리……할 수 있었을 텐데~~!

 

아하하……. 그래도 마야노 쨩도 지금은 자신만의 밴드를 찾았잖아. 어때, 연습은 순조로워?

 

으, 으으음~……. 그게, 조~금 어렵?달까……. 

……벨 쨩이랑 후쿠키타루 씨 같은 반이지? 후쿠키타루 씨……역시 항상 활기차고, 럭키~해피~같은 느낌? 시리어스 하진 않지?

 

응, 후쿠 쨩은……반에서도 항상 그런 느낌일까나. 행동이 별나보이지만 장난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후쿠 쨩’……. 

……마야에겐 언제쯤이면 그렇게 불러주려나~?

 

앗. 그……게~……. 

 

벨과 마야노는 대략 이런 사이다. 이제는 친한 친구, 그러나 영혼의 단짝이라기엔 뭔가 부족한 그들. 

벨은 마야노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다. 지난 2년동안, 마야노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다가오는 마야노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그저 밀어내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시니어 시즌 타카라즈카 기념에 이르러서야 묵은 감정을 전부 쏟아내는 일이 가능했다. 그전까지 ‘친구’라고 불러줬던 마야노에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멋쩍게 웃으며 넘겨버린 자신이……쭉 후회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끝내 원망도 못하고 선망해 버린 주제에. 그런 식으로 회피해 왔던 자신이 이제 와서 친근하게 별명으로 막 부르는 건 뻔뻔한 것도 같고 가벼운 것도 같아 마음에 걸렸다. 장본인인 마야노는 괜찮다곤 했지만, 적어도 막 화해한 우리가 제대로 친근해질 때까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어쩐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녀를 별명으로 부를 기미가 생기지 않고……이 정도면 됐나, 하다가도 ‘마야노 쨩’이 입에 붙어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저 자신도 긴가민가해서 영문을 몰랐고 남에게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정했다! 기다리기만 하면 원하는 건 평생 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번 성제제에 마야가 멋진 연주를 해내면, 벨 쨩은 그날 반드시 마야를 ‘마야 쨩’이라고 부르는 거야!

 

에엑~?!

 

에엑이 아니야! 마야는 계속 쭉 기다려왔으니까, 이번엔 안 물러날 거야! 

약속. 반드시, 꼭이야!


시간이 지나고 우여곡절 끝에 결정된 벨의 포지션은 무려 메인 보컬이 되었다. ‘의지가 되는’ 자신이 되기 위해서, 무대의 정중앙이라는 압박감 정도는 거뜬히 이겨내 보라는 히시 아마존의 언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담하게 들렸지만 위닝 라이브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게 일상다반사였으니 무턱대고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벨은 오히려 의문이 들었다. 정말 ‘보컬만’으로 된 것일까? 아무리 자신이 메인 보컬이라고는 하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같이 노래를 부르며 기타와 베이스까지 연주하는데. 

보통 3인조 밴드라고 하면 어딘가에 드럼이 들어가 노랫소리와 나머지 악기 연주 사이에 빈 소리를 채워줘야한다. 그러나 무대 정중앙에서 보컬과 드럼을 겸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온정신이 매우 바쁘거니와 그 속에서 안정된 음정을 유지하는 일은 초보인 자신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일 것이다. 그러니 메인 보컬이라는, 자신을 배려해 주었기에 나온 결론에 어딘가 빚을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겉멋만 있을 뿐, 속은 사실 별 것 없는 것 같은…….

 

벨은 성제제에서 노래할 곡을 플레이리스트에서 다시 한 번 들었다. ‘Never Looking Back’. 자신이 처음 들었던 날부터 좋아하게 된 노래였다. 두 사람이 이것을 성제제에서 연주할 것이라고 말했을 때는 마치 운명 같다고 느껴졌다. “마음 가는 대로 되지 않아 울고 싶은 날도”. “Don't Give It Up. 믿고 있어. 가슴을 애태우는 정열……”. 꼭 자신의 트윙클 시리즈를 가사로 표현한 것 같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방금까지 아무도 없을 터였던 자신의 등 뒤에서 느닷없이 무슨 얘기냐는 질문이 튀어나와 깜짝 놀라 돌아보니 브라이언이 있었다. 그녀는 마침 잘 만났다며 지금까지 연마한 베이스를 시험해보고 싶으니 세션을 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최근 브라이언은 우연찮게 마야노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면서 나날이 베이스 실력이 급성장하고 있었다. 벨과 함께 세션을 시작하면서도 그녀는 역시나 메인 보컬의 노랫소리를 확실하게 받쳐주는 베이스와 백보컬을 동시에 발산하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이대로라면……부족한 건 자신뿐. 모두를 제치고 앞질러 나갈 마지막 한 방이 없는, 여전히 미숙하고 어리숙한 자신이다. 그런 침체된 분위기를 눈치챈 브라이언이 조용히 말을 건네왔다. 

 

너……

굶주려있군. 

 

네……?

 

목소리는 마음의 거울이라고 안 하나? 네가 어떤 심정으로 부르는지 뻔히 보인다. 

망설이고 있어. 그러다간 관객조차 눈치 챈다. 

 

……그게. 

 

이윽고 벨은 복잡한 자신의 심경을 브라이언에게 전부 털어놓기로 했다. ‘무언가 부족하다. 자신도 무언가를 더 할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브라이언은 잠자코 들어주면서 이내 어깨에 걸려있던 스트랩을 빼지 않고 베이스를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낮은 베이스 음치고는 강렬하고 화려해서 그만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연주였다. 

 

이 소리, 받쳐볼 수 있겠나? 아마 씨와 내가 의지된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노래를 부르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건 생각보다 고단한 일인데, 그 각오와 배짱은 있나?

 

……저는. 

……그것이, 지금의 내 꿈 중 하나니까요!!

나의 미래에 최고의 미소를 짓는 당신들과 함께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믿음직스럽게 되고 싶어요. 나에게 언제나 손을 내밀어준 당신들에게, 이번에는 내가 손을 잡아 끌어주고 싶으니까……! 힘들 때도 괴로울 때도, ‘내가 있으니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게 되고 싶어!

 

……하핫. 

나는 누군가의 힘이 되어 이끌어주려는 감정에 관심이 없어,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그런데 너는──우리들을 너무 좋아하잖아. 그 열렬하고 안달 난 모습을 감추지도 않고 달려드니, 모른 척할 수도 없다고. 

 

……메인 보컬인 제가 악기를 도입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세션을 맞춰야 할 터. 

무엇을 해야할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 뭐라도 반드시 하고 말 거예요. 

이렇게 충동적이고, 지금까지 중에서 제일 제멋대로인 저를……받아들여주실 수 있나요?

 

받아들여줄 수 있냐고? 핫, 어디 해 봐. 감당 불가능이 될 때까지 난동 부려 보라고. 

네가 밴드에 들어오고 싶다고 했을 때, 드물게 앞뒤 재지 않고 솔직하게 네 마음을 우선했지. 

“계속 도전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의 무지개”처럼. 

어차피 이런 게 좋은 것이잖나? 관객도, 너도, 아마 씨도. 이 가사, 네가 되어봐라. 

──악기 말이다, 좋은 걸 알고 있는데. 한 번 들어보겠나?

 

그것은 드럼음이 나오는 신시사이저. 

드럼과 보컬을 겸업하는 것은 초보한테는 역부족이겠지만, 보컬과 신시사이저를 겸업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다만 신시사이저로 드럼음을 연주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부터 상반되어서 이것 또한 적응하기 위해 상당한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역시나 메인 보컬, 화려한 발상이구만. 히시 아마존은 아무렇지도 않게 벨의 결정을 받아들여주었다. 이렇게까지 시원하게 인정해 주어도 되는 건가, 곡 편성을 다시 맞추는 일이 되는데도. 자신이 원하기는 하지만 메인 보컬이 상상 이상으로 눈에 띄는 게?라는 걱정에 브라이언도 히시 아마존도 코웃음을 쳤다. 우리의 연주가 너를 집어삼키러 갈 거야, 너는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을 거다. 이것은 누가 더 관객의 마음에 자신을 새길 수 있는지의, 셋의 싸움이기도 했다. 

내친김에 히시 아마존은 자신의 기타 솔로파트에 벨의 신시사이저까지 들어오라고 제안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매사에 진검승부를 하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려. 그렇다면 그걸 정면에서 충돌시켜 누구의 열이 더 뜨거운지 승부다. 그렇게 여기에 모인 우리들이기에 비로소 딱 맞는 호흡이 태어날 거야”. 그 말에 벨은 봄의 끝자락에 경험해 본 드로와의 감각을 떠올리며, 다시금 전력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그 뒤로 아침이 되었다가 밤이 되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연습의 날은 바쁘게도 지나가 이윽고 라이브 당일이 다가왔다. 벨은 라이브를 시작하기 전 무대에서 슬며시 관객석을 둘러보았다. 거기에는 아직 기를 완전히 펼치지 못한 그 아이가 자신과 눈이 마주쳤고, 벨은 마이크 앞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진심을 겨뤄주는 라이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그리고 날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만났어. 그렇기에 나는 그들에게 의지가 되는 커다란 존재가 되고 싶어. 

분명 텅 비어있고 위축되어있는 예전의 자신이었으면 생각도 못할 주제넘은 마음. 

그러니 지금까지의,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외침을 들어줘! 나의 궤적을 그 마음에 때려 박겠어!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카베르네 캠벨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의 정중앙에 서 있다. 누구의 열도 남김없이 먹어치우는 절대강자 브라이언과 기세가 강렬해서 타오를 것 같은 히시 아마존에게 부딪히고 있다. 역시나 셋 다 타협 따윈 하나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자신이 먼저라며 앞다투어 험난한 경쟁구도를 그리고 있다. 그런 식으로 숨을 내뱉어 호흡하는 것이다. 

 

머릿속까지 구석구석 이 순간을 채워넣겠어!

웃는 얼굴이 되어! 되고 싶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 줄게! 

나는 아직, 아직도 미완성이야! 모두처럼 금방 익숙해지지 못하고, 아무리 해도 서툴거나 미덥지 못한 부분들이 존재해. 

그런 나니까……기대하고 싶어지지? 좀 더 보고 싶어지지? 내가 꿈을 이루는 순간을……정상에 다다르는 모습을, 그렇지?

그러니까 밑바닥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면, 올라 와! 밑바닥의 경치 같은 건 시시하잖아!

 

벨답지 않게 꽤나 패기 있게 큰소리를 친다. 자신감 없는 허당에, 꿈의 가능성을 번번이 놓쳐 주저앉아 울고 있던 사람이. 밑바닥에서 올라온 벨이기에 누구나가 어딘가 벨의 승리를 바라고, 응원하고 싶어진다. 기어코 무대의 센터를 거머쥐러 올라온 벨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며. 

미완성인 카베르네 캠벨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마다 이렇듯 또다시 벽에 가로막혀버릴 것이다. 트윙클 시리즈가 끝나도 눈부신 완성형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처럼 그럴듯하고 매끄럽게 장애물을 뛰어넘진 못할 것이다. 아무리 지금의 꿈을 이뤄도, 새로운 꿈을 시작하면 힘껏 넘어지고 깨지는 벨. 하지만 한결같은 끈기야말로 꿈을 꿰뚫을 수 있는 열쇠가 되어, 이윽고 어디까지 돌파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 모두 그녀의 여정에 따라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라이브가 끝나고 관객은 다시 한번 내일로 나아갈 희망을 품으며 박수를 보냈다. 그 아이는 생기를 되찾은 눈으로 겨우 웃는 얼굴로 돌아와 주었다. 그 속에서 마야노는 남몰래 입매에 호선을 그리며 따뜻하게 벨 쪽을 바라보았다. 내리쬐는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으로 받을 수 있게 된 그녀를 보고 한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있잖아, 마야에게 있어서 벨 쨩은 말이야. ──우상이야. 

마야는 과거에 내게 보여준 ‘어른인 척’한 모습도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해. 

너는 내가 거북했었지만……동시에 함부로 대한 적도 없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건 너의 상냥함이 반 정도 들어가 있는 걸 거야. 

온화하고, 남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씩씩하고, 성실한……그 모습은 아직도 존재하잖아?

그러니까 벨 쨩은……마야가 닮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 그대로 이어져있는 거야. 마야는 모든 걸 드러내면 어린애가 되어버리는데, 치사해. 

그래도 오늘은 너의 나머지 반……함께 만든 유치한 구석을 자극시켜서 배꼽 빠지게 웃기고, 너에게 반드시 원하는 말을 들을게!

벨 쨩을 뛰어넘을 거야. 나도 너를 쭉 선망해, 벨 쨩)

 

그리고 드디어 마야노가 소속된 밴드 ‘마녀무스메’의 차례가 다가왔다. 처음에는 관객들의 포근하고 큐트한 곡이 나올 거란 상상을 깨버린 듯 만담 상황극이 펼쳐지고, 이어서 영문을 모르는 가사와 함께 흥겨운 곡이 흘러나왔다. ‘연어한 여행’이라던지 ‘장어 대유행’이라던지 정말 가사의 의미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와버렸다. 거기다 후쿠키타루가 마네키네코로 변신한다던지, 드럼에서 비둘기가 날아온다던지 등의, 경악스럽고 상상력과 흥미를 자극하는 상황이 연달아 일어나 마치 개그방송의 연출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흘리고 있는 땀과 솟아나는 열정을 보면 이것이 진심전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를 웃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마다않고 자신마저 소재로 열심히 달려오는 사람들. 정말 마법사 같은 그들. 벨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모든 잔걱정과 긴장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얼굴이 되어버렸다. 아아, 그러네……. 네 말대로 너는, 너희들은──정말 멋지다. 라이브가 끝난 동시에 벨은 비로소 자신의 속마음에 숨겨진 진실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성제제의 모든 행사가 끝나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각각 부스를 접고 힘을 모아 뒷정리를 끝낸 뒤 너도나도 뒤풀이를 시작했다. 북적북적한 인파 가운데 벨은 뒤풀이도 뒤로 하고 마야노를 찾아다니고 있었으며 그녀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마야노는 밴드 멤버들과 이야기하는 중에도 벨을 보자마자 금방 지친 기색이 사라지고 자신만만해지며 이쪽을 향해 눈을 빛내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벨의 부탁에 따라 뒤뜰에서 둘만 있게 되었을 때 마야노는 확신에 가까운 질문으로 자신이 멋졌냐고 물어왔다. 벨도 그에 응해 모두에게 응원을 보내는 모습이 멋졌다며, “마야 쨩”이라고 부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야노가 곱씹듯이 점차 크게 기뻐하며 성취감에 젖어있을 무렵, 벨이 “그런데……”라고 덧붙이며 운을 띄웠다. 

 

미안해! 나, 역시 앞으로도 널 ‘마야노 쨩’이라고 부르게 해주지 않을래?

 

……. 

에에에~!? 왜?! 어째서? 마야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혹시, 벨 쨩은 아직 마야와 친근하지 않다고 생각해?

 

설마! 그게 아니야. 나 있잖아……. 

아마도 나는 ‘마야노 쨩’이란 호칭이 좋은 거야. 

 

……?? 벼, 별명이 아니라? 그치만 친한 사이의 증거가 별명을 부르는 거잖아?

 

그렇긴 한데, 뭐랄까. 우리는 잘 맞지 않을 때도 있잖아? 취향이나 성향 차이로 사소하게 부딪히고. 

평소의 우린 그런 경향이 있어. 그리고 정말로 다투게 되어 서로 토라진다고 해도……금방 또 눈을 마주치며 장난치듯 씨익 웃어. 금세 서운한 것도 잊고 빵 터져서 화해하겠지. 

그런 분위기를 보며 생각하게 되는 거야. 우리는 부딪히니까 친해질 수 있는 거라고. 

이것도 미완성의 한 종류라고. 

 

!

 

‘마야 쨩’이 싫은 건 아니지만, ‘마야노 쨩’에겐 지금까지의 우리가 담겨있어. 열등감과 비굴함만 덕지덕지 발라 네 이름을 불렀던 내가, 지금은 맑게 소리를 드높여 당당하게 부를 수 있어. 

그게 좋아. 변한 우리가 좋아. 투닥거려도 다시 친해질 수 있는 우리가 좋아. 

지금은 네 옆에서 계속 이름을 부르고 싶어. 이건 아마도……

 

……애착이, 생긴 거야?

 

후훗, 너는 참 잘 ‘알아버린다니까’. 

 

……! 그치, 그치! 마야, 벨 쨩에 대한 거 이제는 잘 알아! 자부할 수 있어! 

에헤헤. 그럼……말이야. 어느 쪽도 좋아. 마야도, 마야노도. 벨 쨩이 그때그때 좋을 대로 부르는 걸로!

아, 하지만 마야는 별명을 부르면서 친한 사이라고 마구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 몇 번 정도는 별명으로 불러줬으면 좋겠어! 

 

아하하! 그러네. 듣고 보니 그것도 좋을 것 같아!

사실 아까 말이야, 나도 너처럼 직감으로 알아버린 게 있어. 

──오늘은 절대로, 너를 ‘마야 쨩’이라고 부르게 될 거라고!

 

온화한 시선, 속 깊은 다정. 정성스럽고, 사려 깊게. 항상 열과 성을 다하고 허투루 못해 서툰 부분까지 포함해서, 한결같이 자신을 대하는 벨의 모습은. 

역시, 자신의 이상답게 눈부시다고……마야노는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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