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좀비는 본래 인간. 그러나 감염된 순간 인간으로서 남은 점은 오직 껍데기 뿐이게 된다. 사고력과 언어력은 퇴화되고 야생의 본능처럼 자기 감정이 근본적인 행동 이유이다.
좀비는 제 밑으로 쓰러진 인간의 목을 향해 입을 벌리고 서서히 다가갔다. 눈 앞의 이 인간을 깨물어서, 자신과 똑같이 만들 셈이었다.
──하지 마.
텁. 자신의 벌린 입이 익숙하게 한 손으로 막혔다. 좀비는 멈칫하며 이내 순종적이게 얌전히 일어섰다. 입마개도 안 한 좀비를 막 다루다니, 주인이라도 되는 거냐? 늑대 가죽을 뒤집어쓴 여자는 그 말에 모멸찬 눈으로 답한다.
가라. 봐준 게 아니야. 네가 터뜨린 코피의 빚은 언젠가 반드시 갚지.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인영은 점점 사라졌다. 좀비는 ‘역시 물리게 두면 됐잖아?’라는 얼굴로 사냥꾼을 지긋이 바라봤다. 표정 변화가 적은 몬스터인 좀비일텐데, 유독 생생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는 녀석이다.
……알겠나. 네게 윤리관이 얼마나 먹힐지 기대는 안하지만.
약속했잖아. 인간을 물지 마라.
그녀는 좀비를 인간으로 돌릴 수 있으면 되돌릴 것이다. 그러니 좀비라고 해도 죄는 하나도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같은 건 평소의 바보짓으로 조금 다치는, 평범한 인간 정도면 된다. 하여튼 무언가를 책임지는 건 자기 하나면 충분한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그때 네 머리에 화살만 쏘지 않았다면…….
②어느 한 마을의 의뢰를 받은 것이 시초였다. 마을 주변을 서성거리는 괴물이 있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떠나지를 않아요. 좀비는 인간을 깨물어 자신과 똑같이 만드는 감염 능력이 있으면서, 빠르게 상처를 회복하는 초재생능력이 있었다. 화살은 머리에 꽂히는 순간 신속하게 재생된 살점 사이로 단단히 박혀버렸다. 소용이 없어──발을 묶자는 작전이 실패하고 눈이 마주친 순간에는 삽시간에 오싹해졌다. 이 녀석, 틀렸어. 아무 것도 안 먹혀. 그렇다고 사냥꾼의 명성을 생각해서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사냥꾼은 좀비를 가까스로 포박하고 자기 집 창고에 가둬놨다.
그리고 그 결정은 하루만에 후회하게 된다…….
대체 뭐야, 이 녀석은……
왜인지 자꾸만 탈출을 시도해서 마을로 돌아가려고 했다. 힘은 좀비화의 영향인지 무식하게 세서 자꾸 밧줄을 찢어놓고 잠긴 문을 부숴놔서 애를 먹었다. 새벽에 물을 마시러 나가다가 창문 밖에 까만 그림자를 보고 무장한 적이 벌써 몇 번째인지…….
이대로면 잠도 제대로 못 자겠다. 이러는 건 뭔가 이유가 있다고 여겨져 결국 이 녀석의 ‘인간’ 시절을 알아보기로 했다. 특정 장소를 고집하는 건 감염 전의 남아 있는 원념이 원인일 것이다. 녀석은 나름의 언어를 알아듣고, 식생활을 할 줄 안다. 그녀는 시간 벌기용으로 무식하게 긴 바게트를 창고에 던지고 신변 조사에 나섰다. 그렇게 분주히 돌아다닌 결과, 드디어 성과가 나왔다.
좀비라는 것은, 어떤 매드사이언티스트의 대량 실패작이다. 그 놈은 몬스터의 신체능력을 인간의 몸에 담아내기 위해 실험군을 모아 비밀리에 실험을 진행했다. 좀비에게 재생능력이 있으면서 얼굴에 인공적인 자국이 있는 건 그 때문이겠지. 실험이 실패하면 완전히 좀비가 되어버린 실패작을 두고 거점을 바꿔 실험을 강행한다. 하지만 이 녀석-카베르네 캠벨-은 그 중에서도 특이한 케이스였다. 실험을 위해 잠깐 맡아준 걸로 ‘좋은 사람’, ‘보호자’라고 인식한 것이었다. 마을 구석을 몰래 차지하던 거점은 이미 자취를 감춘 것도 모르고 이 자를 찾기 위해 계속해서 돌아간다. 즉,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것도 모른다. 그러니 마을 주변을 계속해서 서성거리다가 주민들이 겁을 먹은 것이다. 순박하고 물러서, 쉽게 정을 주는 생명체.
그리고 그건──사냥꾼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돌아온 사냥꾼에게는 바게트 반쪽이 기다리고 있었다. 좀비는 사냥꾼을 보자 남겨두었던 바게트를 들이밀었고, 사냥꾼이 얼떨떨하게 받아들자 철이 된 나머지 바게트를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었다.
설마……이런 걸로 따른다고?
바게트는 조사 도중 마을로 튀어나가는 녀석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저 녀석은, 빵을 주었다는 것만으로 이제 자신을 ‘공동체’로 생각한다. 설마 정을 느끼는 건 아니겠지. 겨우 이런 걸로……. 사냥꾼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스멀스멀 불안감이 올라왔다. 예상이 적중하면서 불필요한 호의를 받게된 사냥꾼은 처음보다 더 복잡한 심경이 되어버렸다.
③그 날은 가방을 잃어버렸다. 사냥감에게 한 번 쫓기다가 떨어진 것 같았다. 그 안에는 중요한 게 많이 들어있어서 찾으러 가고 싶었지만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밤에는 야생 동물이 더 붐비는 시간대이다. 하는 수 없이 내일을 기약하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요즘은 잡스러운 생각이 많아졌다. 주로 녀석에 관한 것이었다. 녀석은 거의 창고에서 살고 있는 셈이 되었다. 은인 격이 되었다고 간단한 명령을 듣게 되어 포박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포박은 “나오지 마”를 듣지 않고 마을로 나갈 때 시행했다. 그 외에 다른 명령도 시도해봤지만, 뭘 깨뜨리거나, 떨어뜨리거나, 하여간에 칠칠맞아서 별 도움은 안 되었다. 나르던 호박을 깨뜨려서 울먹일 때는 인간다움을 보여 당황했지만…….
(생각난 김에 상태를 보러 갈까)
정을 붙일 생각은 없었다. 안간힘을 써서 죽이느니, 어딘가에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입마개를 착용해도 저것은, 괴물이다. 여차하면 똑같이 당한다. 네가 무르다고 나도 무를 수는 없다. 사냥꾼이란 직업은 본래 완고한 결단력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녀석……또 어디 간 거야. 또 마을에 돌아가려고 탈출한 건가?
하아……성가셔…….
녀석은 사라져 있었다. 질리지도 않는 건가. 그깟 놈이 대체 뭐라고. 머리를 부여잡고 나가려는데 스산한 시선이 느껴졌다. 소름돋는 기분에 반사 신경으로 그 쪽을 돌아봤는데……여전하고, 조금 낯익게 된 얼굴의 좀비가 온몸에 나뭇가지를 꽂은 채로 멀뚱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안그래도 몰골이 심했던 옷은 더 넝마가 되었다.
뭐한 거야……? 설마, 사람이라도 덮쳤나……!?
녀석에 입에 입마개가 없는 걸 확인한 순간 재빨리 다그쳤으나 녀석은 입 대신 손을 벌려주었다. 손에는 달그락, 하고 자신의 가방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이건……틀림없는 자신의 가방이었다. 예상을 못한 나는 멍때리고 있었다.
(잃어버렸다고 말한 적 없는데. 혹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나? 젠장, 방심하다니……)
(아니, 그보다 가방의 생김새를 기억했어. 좀비는 기억력이 좋은가? 만약 사실이라면 위험한데)
내가 아무 반응이 없으니 녀석은 눈치를 봤다. 그러더니 부자연스럽게 삐걱대며 ‘잘못했어?’같은 뉘앙스를 취했다.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보인가……. 바보냐고)
(이 녀석은 바보다. 오히려 잘못한 쪽은……)
그 뒤로 아무 말 없이 녀석의 몸에 꽂힌 나뭇가지를 뽑고 창고로 돌려보냈다. 아무 증거도 없이 의심한 것에 순간 회의감이 들었다. 왜지?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이 몬스터에게 통할 리가 없다. 당연한 생각인데……
(하지만 한 번도 물린 적 없는데……라는 생각도 든다)
(왜 이렇게 초라한 기분이 드는 거지, 나는……)
그 미친 과학자한테도 의심 없이 함부로 정을 주고, 물러터진 얼굴을 해서 좀비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속이 갑갑했다. 대체 세상은 왜 이렇게 되는 건가…….
결국 나는 별 말 못한 것에 대해 짓눌리는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창고에 들르니 녀석은 여전했다. 아니, 좀 더 눈여겨보니 고개를 조금 갸우뚱거렸다. 시선은 가방에 고정한 채. 아마 ‘내 가방 맞다’라는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되려 묻고 싶은게 산더미였다. ‘어디서 잃어버린 줄 알고 무턱대고 나가나’. ‘내가 잃어버린 게 너와 무슨 상관인데’. ‘몬스터인 주제에 괜한 참견 마라’. 그러나……입에서는 하려고 했던 말과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내 가방이다. ……고마워.
……!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녀석은……웃고 있었다.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있었다. 짐승이나, 몬스터의 신호같은 게 아니다. 그것 이상으로 감정을 갖고 있는 너는, ‘아직 인간’인 부분이 있었다. 나는 이제 그걸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뒤로 우리는 규칙을 정하게 되었다.
첫째, 아무 말 없이 돌아다니지 마라. 어딜 갈 거면 나를 반드시 동행한다.
둘째, 몸에 이상이 생기면 바로바로 수습해라.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방치하나. 재생해라.
마지막,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은 물지 마라. ……알겠나?
녀석은 사람 속도 모르고 단번에 끄덕거린다. 알아들은 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 사냥꾼은 미간을 콕 집으면서 생각했다. 답지도 않게 멋을 부리려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초라해지는 것은 싫다. 하지만 눈 앞의 네가 뭔지 알고도 부정만 해대는 자신은……역시 초라하지 않은가? 누군가는 몬스터를 이해하려 한다니 어리석다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래도저래도 초라하다면 나는 적어도 마음이 가는 쪽으로 하기로 했다.
나는 이 녀석, 벨을 인간으로 되돌리기로 정했다. 세간에는 해독제 연구도 희박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너도 살을 베이면 피가 흘러나온다. 빵 한 조각이라도 나눠먹으면 배를 채웠다고 기뻐한다. 그로부터 점점 더 우리는 같은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언젠가 내 이름을 네 목소리로 내뱉는 그 날까지……
내가 너를 인간으로, 감염시켜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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